추석 연휴에 응급실에 갔다.
월요일 밤에 배가 콕콕 쑤시더니 자정 쯤 되어서는 창자를 쥐어 짜내는 느낌.
수 차례 경험한 통증으로 '이건 장염이고 응급실에 가기 전까진 계속된다!' 라는
강렬한 느낌이 왔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참는 쪽을 택했다.
한번 참아보고 아침에 휴일 영업하는 병원에 가자고 마음 먹었는데,
한숨도 못 자고 설사 8회, 구토 10회 정도를 하자 이젠 입에선
춘향전에서나 읽어 본 '간장의 썩은 물' 같은 게 나왔고
밑으로는 방금 마신 이온 음료가 입을 통해 똥구멍으로 다이렉트로 나오는 상황.
이대로 더 참는 건 도저히 무리다 싶어서 결국 최악의 시간 새벽 3시에
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.
'의료 대란', '응급실 뺑뺑이' 같은 기사를 떠올리며 안 받아주면 어쩌지 싶었는데
걱정했던 것과 달리 바로 응급실 침대에 눕는 건 가능했다.
뭐야? 응급실 대란이라더니 다 선동이었나? 싶었는데
한 시간 정도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하고 누워 있으면서
지금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.
'의사가 한 명 뿐이라 좀 늦어요.' 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
'저 사람도 환자 같은데?'라는 생각이 드는 초췌한 얼굴의 의사 한 명만
돌아다니며 진료를 보는 상황. 뭐랄까 그나마 경증은 침대에 누워서 참다보면
진료를 받긴 받는데 중증은 아예 환자를 돌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인 듯 했다.
그렇게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했던 생각이 참 부끄러운데.
간호사가 쥐어 준 구토용 비닐봉지를 잡고 누워서 내가 간절히 바란 건,
제발 내 진료 순서 전에 어디 한 군데 깨지거나 작살 난 진짜 응급한 환자가
들어와서 내 진료 순서가 밀리는 걱정 뿐이었다.
내가 이기적인 탓이겠지만, 돌이켜 생각하니 쫌 그렇다.